"참새알 껍질속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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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산악인 김문식 작.)
“시대상을 대변하는 사진 참새알 껍질속의 비밀”
사진은 시대상을 대변하는 역사의 기록이며 산 증거물이다. 당 시대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을지도 모를 장난기 서린 고교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40년 세월을 훌쩍 넘긴 체 필자에게 전해져왔다. 사진의 출처가 전문 작가의 창작품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고스란히 한 시대의 고교생들의 시대상을 대변하는 소중한 자료로서 그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현 시점에서 바라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사진의 의미는 단순한 가방과 모자로서의 기록만이 아니라, 1960년대 당시의 고교생들의 생활상과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이 되고 있다. 그 시대엔 유난히도 모자의 깃을 세우고 멋을 부리거나 애써 낡은 모자를 만들어 고참의 태를 내고 싶어 했으며, 가방 또한 지금처럼 어깨에 메고 편리하게 등하교를 하였던 것이 아닌, 전형적인 형태의 두 줄 끈이 달린 가방을 양손에 번갈아 바꿔들며 힘겹게 등하교를 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모자와 가방은 바로 당시 학생들의 패션의 대상이었으며, 학생들이 멋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그 시대에 부합되는 학생들의 소지품이나, 복장에 대한 규정과 규율은 마냥 자유롭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심리를 역으로 묶어놓으려 하였으며, 그러한 규정과 규율이 제재의 울타리가 되어 지나침을 완화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심리적으로 구속을 당하면 더욱 반발하려는 심리를 발휘하게 되며, 이러한 심리가 때론 역발상 적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 해내는 끼를 발동시키게 된다. 사진에서 보여준 가방의 낙서가 바로 그러한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 해주고 있다. 학생들이 등교 시 중 고교의 정문 앞에서는 언제나 규율부(현행 선도부)가 완장을 차고 서서 지나치게 모자를 세워 멋을 부리거나, 낡아 헤어진 가방을 보면 단속을 하기도 하였으며, 자칫하면 담임선생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경우엔 외형적인 요인에 의해 문제아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으나, 끼가 있는 아이들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요즘세대에는 상당한 부분이 인정되고, 내놓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나,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그러한 행위를 용인하려 하지 않았다. 낙서가 가득한 책가방의 외형은 어쩌면 당시의 어른들의 눈에는 불량기 서린 학생들의 남루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며, 그것은 외형을 통하여 내면의 정신세계까지도 선하게 보려 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이를 기록으로 남긴 산악인 김문식이 제공해준 시대적 사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의 사진은 희귀성을 지닌 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다수의 예술가들이나 끼를 지녔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풍부한 상상력과 현실을 뛰어넘는 도전적인 행위와 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그들의 상상력과 도전의식이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산악인 김문식은 고교시절부터 등산을 좋아하여 일찍이 1966년도에 대륙산악회(1958년 창립)에 가입하였으며, 특히 암벽 타기를 즐겨 하였다. 김문식은 1970년대에는 부산의 연합산악회를 창립하였으며,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고 고상돈’ 대원과 같이 원정했던 선 후배 원정대원들과도 함께 활동을 하였던 전문 산악인이다. 그는 고교시절에는 취미도 다양하여 일반 학생들의 상상을 뛰어넘어 가방에 낙서하기는 물론 칼라 낙서와 가방에 망사 실을 꿰어 각종 장식물을 달기도 하였으며, 색다른 문패 수집하기, 거리의 간판 외우기 등 성격이 괴팍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남다른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제공해준 사진도 당시 같은 학교의 친구에게 가방을 양도해주며, 그 기념으로 남긴 사진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취미는 좀 더 발전하여 1967년 필자와 만나게 된 당시에도 부산의 에덴공원을 오르내리는 길가 좌우에 즐비하게 늘어선 간판을 외우는 등, 이색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각종 산악행사 및 등산대회에 참여한 기념 뺏지를 모자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 빽빽하게 달았으며, 그것은 곧 등산 경력을 상징하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또한 등산 후에는 반드시 그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매 차수별 등반 코스와 함께 스크랩을 하여 보존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기록습관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사진으로 일기를 쓰듯 그의 홈페이지를 메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길을 가다가도 길가에 색다른 돌이 발견되면 기어이 그 돌을 파내어 큼직한 가방에 담아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그때 이미 20대의 어린 나이로, 부산의 바닷가가 보이는 대연동 아늑한 곳에 자신이 설계한 2층집을 지었으며, 그의 집 정원에는 형형색색의 문양이 담긴 돌들로 가장자리를 장식해 놓았었다. 그는 지금도 그 집에서 소박한 삶을 꾸려가고 있으며, 정신적 풍요로움으로 장년기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하여 아름다운 글로써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장 소중한 보람으로 생각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그가 이번에 보여준 40년 전의 사진 한 장은 그의 고교시절을 대변하는 시대의 걸작품으로 소개되어 마땅하다. 이것이 진정한 사진의 위력이며, 또한 사진이 지닌 힘이고 매력이다. 20세기의 세계적 사진가중 프랑스 출신의 “자끄 앙리 라르띠끄”는 평생 동안 집안에서 가족의 앨범사진만 찍던 무명인 이었으나, 뒤늦게 공개된 그의 사진은 단번에 새 세대의 사진가들에게 신선하고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그의 사진은 시대적 반향을 받아 일약 세계적 사진가로 발돋움하는 전기를 맞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 시대의 학창시절의 시대적 풍미를 담은 1960년대를 대변할 수 있는 고교시절의 대표적 사진으로 김문식의 “참새알의 껍질 속 그 속의 비밀”이란 제목의 사진을 세상에 공개한다.
(2007년 12월 17일 德岩 張 漢 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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